광주시민을 더 이상 ‘정치적 인질’로 삼지 말라! 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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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우석
게재일 2019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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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의 이인삼각> 문대통령,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몰아세워 문정부 특징은 ‘역사왜곡 통해 이득 얻는 것’…공범 육성위해 ‘갈등’ 필수 매년 5월 18일이 가까워 오면, 1984년 5월의 기억이 생각난다. 필자가 고등학생 때다. 국어선생님이 옆 반에서 ‘1980년 광주이야기’를 하셨다.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했다. 그 일로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시게 됐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선생님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5. 18’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가두투쟁에 나서는 계기도 됐다. ‘6. 10항쟁’때 거리에 나서며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죽기살기로’ 싸웠다. 필자도 당시 명동에서 ‘달려가(체포되)’ 경찰서 유치장에서 꽁보리밥(콩밥이 아니었음)을 먹은 경험이 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오셔서 훈방되었지만, 주변에 부끄럽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노무현정부 들어 그 선생님의 소식을 다시 들었다. 청와대 비서관이 되셨다고 했다. 필자는 이회창 후보를 모시고 대선을 치루어 패했지만, 그 선생님 소식에는 안도감을 느꼈다. 프로필을 보니 퇴직 후 전교조에서 실장을 하셨다고 했다. 대학생활 초 ‘전교조 합법화’를 외치며 모교에 쳐들어가 은사들과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교조가 지금처럼 극성은 아니었다. 나름 명분을 중시했고, 기득권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이런 모습에 ‘참교육’의 의지가 있다고 느꼈다. (선생님은 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직속 기구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86세대들 대부분은 광주에 빚진 마음을 갖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5.18이 가까워오면 착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너무 오염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2000년엔, 86세대 정치인들이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맞아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한 뒤, 광주 시내 ‘새천년 NHK'라는 가라오케에서 접대부를 끼고 술을 마셨다는 보도가 나왔다.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당시 현장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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